나해 2월 14일(연중 제6주일)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랑
예수님 시대 나병 같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머리에 병이 들었다고 규정했고, 마을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다(레위 13,44.46). 한 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니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잘못된 규정이지만, 지금도 정신병이 심하면 강제 격리 입원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만은 여전히 유효한 규정인 것 같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 환자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되고,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쳐야 하지만 그 규정을 어기고 예수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청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그는 규정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울타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려달라고 외친 셈이다. 그것이 그가 살기 위한 최대한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물리치거나 고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와 말을 섞고 그에게 손까지 대시며 치유해주셨다. 예수님은 금을 넘고 아예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런데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걸 보면 예수님은 그것이 위법인 줄 아셨던 것 같다. 연민은 준법정신 위에 있다. 어느 시인이 표현한 대로 우리는 율법이라는 맑은 유리창 넘어 진리를 선명하게 보지만 그 유리벽 때문에 진리에 다가가지 못한다. 사랑은 그 유리벽을 언제 부셔야하는 지 안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그런데 그렇게 치유 받은 그 사람은 예수님 당부를 지키지 않았다. 온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퍼뜨리는 바람에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셔야 했다(마르 1,45). 그 마을과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하셔야 했는데(마르 1,38-39)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은 곤란해지셨다. 사람은 말을 참 안 듣는다. 듣기는 하지만 실행하지는 않는다. 바꾸겠다고 결심만 하지 바뀌지 않는다. 죽게 돼서야 바꾸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 중 가장 아둔하고 불쌍하다. 우리가 이러니 예수님이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시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온 세상에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우리를 섬기러 들어오셨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들어오셨다(마르 10,45). 이게 우리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
주님, 어떤 사람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으니 막살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우리 믿음을 비웃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거나 자신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불효자가 왜 우는지도 모른다면 주님도 어쩌실 수 없을 겁니다. 지극히 송구하지만, 주님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저에게는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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