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2월 15일 앞으로 또 앞으로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셔도 내 믿음의 깊이는 모르실 거다. 물론 나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우정과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믿음도 그런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이 체면 깎이게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며 그의 믿음을 시험하지 않으셨을 거다(창세 22,1-2). 나의 믿음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하느님도 모르시는 미지의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다.
나는 선한 것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 물론 악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행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행은 노력이 거의 필요한 것 같지 않다. 나를 육체에 맡기고 내 안에서 늘 도사리고 있는 탐욕에 동의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저절로 일어난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지만 죄는 예외인 것 같다.
나는 믿음을 전해 받고 물려받았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거의 다 나와 같은 처지다. 오늘 복음은 표징을 요구한 바리사이들 때문에 예수님 마음이 많이 상하셨다고 전한다(마르 8,11-12). 마르코 성인이 이 복음서를 쓸 때 그 공동체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들이 예수님과 같은 세대 혹은 한 세대 정도 후의 사람들이라지만 예수님을 직접 뵙지 못한 건 나와 다를 게 없다. 그들도 나처럼 전해들은 것을 믿어야 했다.
선한 결심은 믿음의 시작이고, 그 실천은 믿음을 성장시키고 더 깊고 단단하게 해준다. 기도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하시려고 치유나 구마의 기적을 행하신 적은 없다. 연민이 기적을 만들었고 당사자와 목격자들 일부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보았다. 예수님은 믿음을 위한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 복음처럼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을 버려두신 채 그 자리를 떠나셨다. 믿음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영원히 살고 예수님처럼 행복해지는 길이고, 아직 가지 않은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다.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뒤로 돌아갈지 하느님도 모르신다. 고민할 것도 없이 언제나 그리고 당신 백성 누구에게나 그러셨듯이 하느님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홍해 앞에서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모세는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모세를 나무라시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탈출 14,15).” 오늘은 그 말씀이 천둥소리 같고 사자의 포효같이 들립니다. 네, 주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령님의 인도를 잘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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