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3월 28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 하느님과 소통하기
기도 시간은 언제나 반갑지 않지만, 기도는 언제나 좋은 선물을 준다. 기도 내내 분심과 잡념을 쫓느라고 시간을 다 보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있으면 그 끝은 늘 좋다. 하느님과 연결됨은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느님과 소통하려고 하면 세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것을 방해한다. 심지어 선하고 거룩한 것들로 위장하면서까지 방해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유일한 중재자시다. 그분이 완전한 중재자가 되시는 길은 정말 험난했다. 한 여인의 몸에 수태될 때부터 아슬아슬했고,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까지 받아들이셔야 했다. 그분의 재판과정은 억지스러웠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는 군중은 그분의 죄목도 대지 못하고 그저 소리만 질러댔다(마르 15,14).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함께 사신 것이 그렇게 못마땅한 일인가? 병자들을 고쳐주고, 악령들을 쫓아낸 것이 안식일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못한 일이었나?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아들이 우물에 빠지면 무조건 구해내지 않나?(루카 14,5) 세상은 진짜 하느님과 마주하기보다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것 같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세 번이나 예고하셨고, 그날을 아시고 미리 다 준비하신 흔적이 보인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타실 어린 나귀를 준비하셨고(마르 11,3), 당신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그 여인은 당신의 장례를 준비한 것으로 여기셨다(마르 14,8). 마지막 파스카 만찬 장소도 다 마련해놓으셨다(마르 14,14). 그분은 그날을 준비하고 기다리셨다. 마치 그날을 위해 사람이 되신 것처럼 보일 정도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셨다. 그전까지는 숨기셨지만 때가 되자 당신이 메시아라고 밝히셨다. 군중은 살인자 바라빠를 풀어주라고 했다. 군중은 죄인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세상 밖으로 몰아냈다. 예수님은 바라빠를 대신해서 죄인이 되신 셈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예수님의 얼굴은 차돌처럼 변함없이 평화로웠다(이사 50,7). 그렇게 될 줄 알고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기도 했다. 세상은 그분을 비난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평화로우셨다. 세상은 다시 하느님과 자신을 분리하는 줄 알았지만, 그분이 부활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덕분에 우리가 하느님과 소통하고 그분과 하나 되는 길이 열렸다.
예수님,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기로 해주셔서 저희가 살길이 생겼습니다. 잠깐 들러 가는 세상이 아니라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곳에서 칭찬받고 환영받는 길을 찾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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