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3월 31일 십자가 길
유다는 정말 마음이 바뀌어서 주님을 배반했을까? 그것보다는 처음부터 다른 마음, 다른 전망을 지니고 예수님의 무리에 속하기로 했을 것 같다. 마음을 180도 바꾸는 건 정말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죄하고 선한 스승을 고작 노예 몸값인 은전 서른 닢(마태 26,15)을 받고 팔아넘긴다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카리스마적인 예수님과 함께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을 거다. 가난뱅이 스승에게 돈과 명예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보다는 그 당시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민족의 해방 혹은 정의로운 세상 정도였을 것 같다. 그분이라면 로마제국의 억압과 사회의 부정과 불의를 없애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그분은 한결같았다. 사랑, 용서, 자비도 좋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었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과 그를 위한 노력은 선하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그분이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하신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셨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예수님은 하느님 품에서(요한 1,2), 하늘나라에서 파견되신 분이다. 그분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말씀과 행적은 그곳을 가리킨다. 만약 그곳에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로 내려와 산다면 세상 사람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리 떼 가운데 있는 양 같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되실 줄 다 아셨다. 당신에 앞서 예언자들이 그랬고 그들은 당신을 그렇게 예언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으니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마태 10,25).”
이기고 싶고, 하는 일이 다 잘 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고 싶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나? 승리하고 성공해야 행복한가? 누가 그렇다고 했나? 출처도 모르는 그 가르침이 내 안에, 내 마음에, 내 뼛속에 새겨져 있다. 그러니 승리와 성공을 위해서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반응하겠지. 그것도 매번 말이다. 예수님 마음을 다스렸던 하느님의 정의와 유다의 정의는 정말 달랐다.
예수님, 주님은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십자가를 내려놓는 즉시 제 안에 새겨진 그 성공과 승리의 법칙이 저를 지배합니다. 그것은 달콤해 보이지만 위험합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자주 다칩니다. 그런 저를 고쳐주시고 위로해주시며 다시 시작해보라고 격려해주시니 오늘도 주님만 믿고 다시 십자가 길을 따라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얼굴은 슬픈 듯 평화롭습니다. 아드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이들의 마음일 겁니다. 그 길을 끝까지 잘 따라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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