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4월 2일(주님 수난 성금요일) 죄송하고 감사한 일(+MP3)

4월 2일(주님 수난 성금요일) 죄송하고 감사한 일

 

예수님의 체포와 형 집행까지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황당한 사건이었겠지만 예수님과 당신을 죽이려는 이들에게는 예정된 일이었다. 재판과정은 요즘말로 답정너 또는 기승전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거짓 증언으로, 그리고 예수님과 지도자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그 일을 이루었다.

 

군중은 나쁜 마음으로 거짓 증언을 한 게 아니라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조건 그분은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 질렀다. 지도자들은 그의 죽음이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고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예수님도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전례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일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체포되고 사형되신다. 우리는 그때처럼 오늘도 신랑을 빼앗겨서 큰 슬픔에 잠긴다. 규정이어서가 아니라 먹을 수가 없어 단식이다. 삶의 의미와 희망과 기쁨이 사라지고 불의하게 폭행당하는데 뭐가 먹고 싶겠나. 진실 정의 평화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진리가 된 것 같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외치지만 결국 그것도 나를 위한 것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이를 가속화하고 강화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 사람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인들은 상대편을 향해 비방과 비난을 쏟아붓는다. 마치 자신들만 정의와 진리의 편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작은 이들은 다치고 상처받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과 정의롭지 못한 체계와 문화가 저지르는 죄악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예수님은 이방인처럼 사셨고 오늘도 그렇게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세상은 그분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들려고 세상 밖으로 몰아냈다.

 

죄스러운 육체와 체제 안에 있는데 순수하고 무죄한 삶이 과연 가능할까? 죄와 악행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는 거다. 먹고 살려니 그렇게 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심지어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옛날에는 염소에 자기 죄를 씌워 광야로 내쫓거나 성전에 제물을 바치면 자신의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무죄하고 순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표현이 옳을 거다. 이렇게 비참한 우리를 위해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제물로 내어놓으셨다. 그분을 믿는 것은 예식이 아니라 실제로 나의 죄를 없애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고 믿기 어렵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당신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로마 3,24).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예수님, 무죄한 이들의 고통, 가장 작은이들의 상처 속에서 수난을 겪고 돌아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들을 당신 십자가의 동반자로 삼으셨다는 말을 알아듣게 해주십시오. 주님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한다면 주님의 집인 그들을 찾아갈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상처 입은 이들을 섬기는 가운데 아드님을 뵙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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