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4월 19일 청원기도(+MP3)

나해 4월 19일 청원기도(+MP3)

 

어른이 돼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 상당수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입교했다고 한다. 기도를 부탁하는 교우들의 청원은 거의 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다 사라지면 마음은 평화로운 걸까?

 

이런 것을 두고 현실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그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최고 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요한 3,1)와 예리코의 세관장이고 부자였던 자캐오(루카 19,1-2)를 제외하면 사실상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들 모두는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은 심오하고 고결한 어떤 것을 얻으려고 주님을 찾지 않는다. 배고프고, 배 아프면 기도도 하기 힘들다. 음식을 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무조건 청한다.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또다시 기도하는 이들이 있고,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님은 하혈하는 병을 앓는 한 여인을 치유하셨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누가 봐도 그 믿음은 미신적이었다(마르 5,28-29). 그런 믿음으로도 그는 병에서 해방됐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구세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마르 5,33). 그때 그의 믿음은 미신적이며 현실 기복적인 차원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는 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려고 그분 뒤를 쫓아다니지 않았을 것이고, 치유나 문제해결을 신앙과 동일시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어렵게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라고 말씀하셨다. 참 차갑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겠다는 그 연민과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어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도록 애쓰라고 말씀하셨다(요한 6,27.29).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마음 안에 계신다고 들었다. 그곳이 심장이나 위장 근처인지 아니면 나의 뇌 속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지는 못하지만 뒤돌아보면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기도한다. 기도를 부탁한 교우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한다. 청원은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하느님께 복종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예수님, 주님은 항상 제 안에 그리고 제 곁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주님을 섬긴다지만 사실 주님이 저를 섬기고 도와주십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를 영원히 살게 하는 믿음이 깊어지고 굳건해져서 더욱 순수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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