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5월 16일(주님승천대축일) 갈릴래아 사람들(+ MP3)

나해 5월 16일(주님승천대축일) 갈릴래아 사람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오셨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셨다(요한 16,28). 인간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사시면서 우리에게 모범을 남겨 놓으셨다. 그것은 하느님 계시는 하늘에 오르는 길이고, 죽은 이도 살리는 진리이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 하느님께로 갈 수 없다(요한 14,6). 이는 그리스도인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특권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완전한 사랑이 그 길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됐다. 그분의 헌신적인 삶, 특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신다. 우리 심판관은 무섭지 않다. 수태부터 죽음까지 거기에 죄의 유혹까지 모두 경험하셨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도 다 아실 거다. 그래서 우리는 조마조마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그분을 믿는 이들은 죄를 용서받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의 그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사도 1,10). 그때까지 죄 안 짓고 착하게 사는 게 우리 신앙이 아니다. 무덤에서 나오시자마자 어두운 다락방에서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하신 첫 명령은 갈릴래아로 오라는 것이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일터로 곧장 가셨다. 제자들은 어두운 다락방에 숨어 있을 게 아니라 갈릴래아를 두루 다녀야 했다. 그래서 천사도 그들을 ‘갈릴래아 사람들(사도 1,11)’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고 대를 이어 예수님의 일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거친 사람들이었다. 여러 마귀에 붙잡혀 족쇄와 쇠사슬을 끊고 돌로 제 몸을 치는 사람(마르 5,4-5),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시체(요한 11,39), 그리고 당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라 그러는 것이니까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고 단죄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사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신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의 거친 말과 행동 그리고 죄악으로 상처 입어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낙담이나 절망하지 않는다. 상처받아 아프지만 죽지 않는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코로나 최전선에서 의료진들이 바이러스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싸우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악을 온몸으로 받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될 것이다(에페 1,19).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주님이 죽음까지 쳐 이기고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승리한다.

 

주님, 저희를 버리고 떠나신 게 아니라 어디에서든 저희 개개인 모두와 함께 계시려고 하늘로 오르신 줄 압니다. 제가 혼자가 아님을 더 굳게 믿게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께로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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