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5월 17일 비움과 순종의 무기(+MP3)

나해 5월 17일 비움과 순종의 무기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다. 육체 안 어딘가에 영이 있다. 영적인 것은 정신적이고 내적이다. 그것은 결정과 선택이 이루어지는 곳과 느낌이나 감정과 같은 정서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그것들과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서 말과 행동이 시작된다.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뜨거운 결심이 식는 데는 사흘도 걸리지 않는다. 그 결심대로 실천하려고 하면 늘 유혹이 생긴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아예 유혹도 없이 그냥 예전에 하던 그대로 해버리고 만다. 진짜로 긴 꼬리에 삼지창을 든 새까만 악마가 내 안에서 변장술을 부리며 갖가지 선하고 아름다운 말과 모습으로 나를 홀리는 건지, 아니면 의지가 약하거나 왜곡되고 병든 성향에 굴복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실재가 무엇이든 유혹은 분명히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생긴다.

 

선한 결심과 유혹이 맞서 싸우는 것을 영적인 전투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 전투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하다. 거의 매번 패배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그랬는데도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겉으로는 연약하고 아둔하다고 실망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자신의 죄를 실수로 위장하고 합리화하지만, 속내는 처음부터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힘이 모자란 게 아니라 아예 전투를 벌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내적 전투에서 승리하셨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그 외적 표현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초인적인 의지와 초능력이 아니라 자기 비움과 순종으로 승리하셨다. 내적인 힘을 더 키우고 의지를 단련시키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고 무심히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유혹 갈등 욕망 분노는 저절로 일어나니 그건 죄가 아니고 그것들을 없앨 수도 없다. 그것과 맞서지 말고 아예 그것들을 그냥 무시한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가소롭게 여긴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기억해내고 따른다. 그렇다고 유혹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러면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 아니 승리한 줄도 모른다. 주님의 영이 내 안에서 살아 일하신다고 믿는다면, 유혹받는 나를 버리고, 귀찮게 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그렇게 세상을 이긴다.

 

예수님, 용기 안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과 낯선 나에 대한 어색함과 의심입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제가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실 준비가 이미 다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언제나 집니다. 그러나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 주님은 언제나 승리하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에 더 익숙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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