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5월 23일(성령 강림 대축일) 용서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기다리고 또 원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제자들에게 당신이 아버지께 가시는 걸 기뻐해야 한다고 하셨고(요한 14,28), 그것 때문에 그들은 울며 애통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다(요한 16,20).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셨다(요한 10,11.15.18). 우리 죄를 없애주시기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셨다고 알고 있다(마태 20,28). 어려운 말로 대속적(代贖的) 죽음이다. 우리를 죄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시켜주셔서 완전한 자유인으로 풀어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함께 사시며 참 이상한 우리들,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매번 그렇게 하는 우리들을 다 보셨다. 우리가 죄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무런 질문 없이 병자들을 무조건 치유하셨다. 그들이 불쌍해서 언제나 무죄 선언을 하셨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그 여인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심판하고 단죄할 마음이 없으셨다. 단죄하고 심판하라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다(요한 3,17). 하느님은 우리를 회복 시켜 살려 당신 품에 안으시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법이 없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냥 용서해주는 법은 없다.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지키는 그 법을 어기셨다. 계속 도전을 받으셨지만 죽어도 바꾸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법은 바뀌지 않고 바뀔 수 없다. 하느님은 죽음으로 그것을 증언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던 것은 그래야만 성령께서 오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령은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을 살리는 물이다. 하지만 당신이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시면, 십자가의 희생 없이는,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으시면 제자들에게 오실 수 없었다(요한 7,38-39).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그분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고, 예수님에게서 받은 대로 알려주신다(요한 16,13.14). 팔레스티나 좁은 땅에만 계셨던 예수님을 이제 성령님은 온 세상 어디서나 믿는 이들 누구에게나 알려주신다.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문을 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나셨다. 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셨다. 용서하셨고 용서받았다는 뜻이다.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처럼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숨일지도 모르겠다. 최초 인간들은 나무에서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십자 나무에서 승리하셨다. 그분의 영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처럼 용서할 수 있게 됐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셨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믿고 용서의 권한을 맡기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주님께서 이런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다니, 정말 두려운 일이다.
예수님, 주님은 지구상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종(種)을 만들어내셨습니다. 단죄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는 능력을 지닌 새로운 인간입니다. 제가 거저 받으니 주님처럼 거저 주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는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아드님을 지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드님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출산하시게 돕는 산파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나게 끝까지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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