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5월 27일 기다림(+MP3)

나해 5월 27일 기다림

 

바르티매오는 눈먼 거지였다. 이웃이 베푸는 자선과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예수님이 그 앞을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외쳐 불렀다. 더 큰 소리로 재차 예수님을 불렀을 때야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게 하셨다(마르 10,49). 예수님이 그를 부르시거나 혹은 그에게 다가오실 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가 살던 예리코는 큰 도시였고, 그가 자선을 받기 위해 자리 잡은 곳이니 거기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그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자선을 청했을 거고, 상인들도 오가는 사람들을 불렀을 거다. 그 수많은 목소리 중에 예수님은 그의 외침을 가려내셨고 그를 부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을 부르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부르신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데려오라고 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무엘이 처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하고 대답했다. 예수님이 죽은 오빠 라자로를 되살리러 오셨을 때, 마르타는 예수님을 마중 나갔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르실 때까지 집에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이 부르시자 그는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요한 11,20.28-29).

 

자신을 부르신다고 하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가난한 이에게는 몸이 재산인 것처럼 그에게 겉옷은 전 재산과 같았다. 담보로 잡혔어도 밤에는 돌려주어 그걸 덮고 자게 해주어야 했다(탈출 22,25; 신명 24,13). 그는 예수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분께 간 것이다. 예수님은 시끄러운 중에 그런 그의 목소리를 가려내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응답하거나 못 듣거나 못 들은 척한다. 우리도 하느님을 찾는다. 선물을 드리려고 찾는 때는 거의 없고 언제나 청할 게 있을 때다. 그 청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한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 내 청원이 바르티매오의 그것과 같은지 또 주님이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벌떡 일어나 달려갈 수 있는지 나를 성찰한다. 주님이 내 목소리를 가려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지향을 순수하게 만든다. 사실 주님은 문밖에서 벌써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 저는 기다립니다. 아니 기다리는 법을 배웁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주님이 이루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말씀 안 하셔도, 제 청을 들어주시지 않아도 저는 언제나 주님 계명을 지키며 주님 곁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모님의 유난히 작은 입은 ‘예’ 또는 ‘아니요’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도 아니요도 모두 주님이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한 대답이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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