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7월 1일 나도 하느님도 모르는 것
나는 죄인이다. 이는 내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범법자가 아니라 주님의 계명을 아직 잘 지키지 못하는 미숙한 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나약함과 모자람을 고백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힘이 내 안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이다(2코린 12,9).
하느님은 나를 살펴보시어 다 아신다(시편 139,1). 그런데도 나도 하느님도 모르는 나의 것이 있다. 그게 믿음이다. 그 옛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창세 22,2).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은 그 대신 죽어도 좋을 아들이고 또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성경은 아들을 바치는 과정을 너무나 담백하게 썼지만, 아브라함의 그 마음, 그의 갈등과 시련을 다 표현하려면 책 한 권이 모자랄 것이다. 아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진짜로 죽이려고 했다. 아마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을 거다. 하느님도 아브라함을 지켜보시며 조마조마하셨을 거다. 아브라함의 그 행동을 보시고 하느님은 비로소 그의 믿음을 아셨다. 그의 믿음은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놓을 정도라는 것이 드러났다(창세 22,12).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지만, 당신 아들은 죽게 놔두셨다. 당연히 하느님은 이사악이 죽는 걸 바라지 않으셨다. 이런 하느님, 나를 위해 외아들까지 내어놓으시는 분이 내가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한다고, 일흔일곱 번 이상 잘못했다고, 중풍이 걸릴 정도로 엉망으로 살았다고, 끝까지 악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다. 그러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다. 나는 이걸 믿는다. 십자고상을 바라볼 때마다 그 믿음을 새롭게 한다. 하느님은 내가 약하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신다. 그래서 언제나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며 다시 시작해보라고 격려하신다. 나의 믿음이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어 하신다.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 하느님의 사랑을 그렇게 보여주셨으니,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결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의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 저를 위해 기도하는 많은 이들의 믿음,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어 저를 용서하시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들것에 실려 온 그 중풍 병자를 보시던 아드님의 그 눈을 어머니의 눈에서 봅니다. 안고 계신 아드님을 저에게 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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