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7월 20일 하느님 현존
한 때는 큰 스님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와 성직자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왠지 심오한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찬례 중 사제들이 하는 행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가던 길을 바꾸었다. 그런데 신학은 공부할수록 너무 사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그 이론들이 내가 접하는 현실과는 다른 별나라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결국 흥미를 잃었다.
심오한 영적인 세계란 하느님 현존이다. 하느님은 살아계시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선문답 같은 스님들의 이야기는 뭔가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잠시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그런데 깨달음이 없고 내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내게 스님들의 가르침은 딱 거기,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 것까지였다. 하느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어제는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40년 동안 돌보고 지금은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여생을 지내시는 마리안느, 마가렛 두 간호사 이야기를 읽었다. 세상은 두 분을 수녀라고 했는데 사진에는 수도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수도복을 입지 않는 수녀들도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 책을 통해 두 분의 신원을 정확히 알았다. 두 분은 재속회원들이다. 그들은 공동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세상 속에서 주님의 복음에 헌신하기로 교회 안에서 서약한 이들이다. 교회의 신원 제도를 잘 모르는 세상은 두 분을 그냥 수녀라고 칭했던 거다. 세상은 수녀는 그런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두 분은 인터뷰는 물론이고 사회가 주는 상을 여러 번 거절했다. 세상에 알려지는 걸 부끄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마태 6,3). 그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컥했지만 가장 감동적인 증언은 자신들은 간호사니, 환자들을 간호했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소록도 주민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40년의 헌신이 그 증언이 가식일 수 없음을 증명한다. 지금도 그 증언과 삶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고개가 숙어진다. 거룩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현존이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 없이 어디에나 계신다. 도움이 필요한 작은 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가장 작은 이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형제자매가 되시고 그들 안에 계시겠다고 하셨다. 당신을 만나고 또 알고 싶으면 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잘해주라고 하셨다(마태 25,40). 관상이 하느님을 보는 거라면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헌신은 하느님과 가족이 되는 거다.
예수님, 주님은 무소유와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늘나라가 땅으로 내려왔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저희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이 필요함을 다 알고 계시니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말라고 하셨으니 저는 하늘나라 시민으로 사는 것만 생각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세상 곳곳에서 가장 작은 이들에게 헌신하는 모든 이들을 도와주시고 힘이 되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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