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7월 24일 신뢰
하루를 시작하며 나쁜 마음으로 악한 계획을 세운 적은 한 번도 없을 거다. 그 생각과 계획이 지금 여기의 하느님 뜻에 부합하는지 잘 모르지만, 최소한 악하지는 않다. 하지만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악한 것을 청하지 않는다. 아픈 이들을 낫게 해주시기를,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시기를 청한다. 그런 청원이 받아들여지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다. 속상하고 원망스럽지만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이거나 하느님 뜻은 다른 데에 있을 거라고 애써 상한 마음을 위로한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24).”고 하셨다. 자기 밭에 잡초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없다. 그런데도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 밭에는 늘 잡초가 자라고 심은 작물보다 더 잘 자라는 것 같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가라지들을 수확 때까지 그냥 놔두라고 하신다(마태 13,29-30). 매일 일하는 종들이 밀과 가라지를 구별 못 할 리가 없을 텐데도 그 주인은 그냥 놔두라고 한다. 어쩌면 종들이 속상한 마음에 가라지들을 마구 뽑다가 행여 밀 한 포기라도 다칠까 봐 걱정스러운가 보다.
태평농법으로 지은 논과 관행 논의 수확량이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마음이 태평하다는 뜻은 아니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신다는 뜻이다. 매일 악행에 대한 보도를 듣고 거짓 정보가 만연하고, 선하게 산다고 별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고 청하지만 잘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실망하고 수확 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놔두라는 그 주인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한다. 환난은 인내를 자라게 하고, 인내하는 동안 믿음은 단련을 받아 더 굳건해지고, 그사이 더 큰 것을 희망하게 된다(로마 5,3-4). 다시 한번,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충실하게 일하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수 있게 마음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 열어 놓는다.
어쩌면 세상의 악 덕분에 내 믿음이 더 순수해지고 굳건해지는 건지 모른다. 내 바람과 꿈이 무너지면서 하느님의 계획에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건지 모른다. 땅에서 보는 세상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분명 매우 다를 거다.
예수님, 주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가라지들을 다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놔두는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거룩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제 믿음은 황금보다 더 소중하니 많은 시련을 받아 더 순수해지고 굳건해져야 합니다. 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안다는 게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신 선하신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를 늘 부를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믿음의 순례를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길을 인도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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