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8월 22일(연중 제21주일) 믿음의 길(+MP3)

나해 8월 22일(연중 제21주일) 믿음의 길

하느님은 사울을 직접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1사무9, 17). 그런데 후에 그는 주님의 명을 어겨서 주님은 그를 내치셨고 그를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한다(1사무15, 11.35). 유다 이스카리옷도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였다. 우리 하느님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시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을 보면 하느님도 사람의 깊은 속내, 그가 당신을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굳건하게 믿는지는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내 믿음의 깊이를 잘 모른다.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감추어져 있던 내 믿음을 보고 알게 된다. 사제라는 직무 때문에 믿음을 설교하고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으라고 격려하지만, 그것이 내가 그렇게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에 이어진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아주 난감해했다. 당신의 살을 씹어 먹고 피를 마시면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거다. 왜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으로 사형됐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으니 부활은 말할 것도 없다. 성찬례에서 지극히 경건하게 성체와 성혈을 영한다.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주님의 살과 피가 되는지 신학교에서 여러 신학자의 이론을 배우고 시험답안도 써냈지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는다. 이해해야 믿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믿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본래 하느님은 우리가 볼 수 없거니와 알 수도 없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취사선택이 아니라 따라야 할 계명이다. 나의 믿음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신뢰이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대부분 되돌아갔다. 열두 제자는 남았다. 그중에서도 또 한 명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아무나 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느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 그럴 수 있다(요한 6, 65). 그래서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 선물을 받은 이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 17). 어떤 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믿지 않고, 또 어떤 이는 이해할 수는 없어도 믿을 수는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참 좋으신 하느님이 계신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불의하고 불공정할 수 있느냐고 도전한다. 나도 모른다. 믿는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만나면 이 모든 것들이 왜 그랬던 것인지, 특히 왜 예수님이 저렇게 돌아가셔야만 했는지, 부활이 어떤 것인지 다 알게 될 거다. 그때까지 내 믿음은 계속 도전과 시련을 받으며 성장하고 굳건해지고 깊어져 갈거다.

예수님, 다시 보니 세상에는 모르는 것투성입니다. 알아야 움직일 수 있다면 저는 한 발짝도 못 나갈 겁니다. 주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를 더 깊은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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