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9월 13일 어떻게 믿는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은 남녀 사이 사랑과 다르다. 연인의 사랑은 호감이나 매력으로 시작되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이웃사랑은 그런 것 없이 마치 상관의 명령을 받은 군인처럼 모든 이에게 잘 대해주는 거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예뻐 보이거나 호감이나 매력을 느끼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아버지 하느님처럼 완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이웃사랑이 하느님 사랑에 버금가는 계명이지만 그 방식은 다른 것 같다. 이웃사랑은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이지만 하느님 사랑은 수동적이고 자유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의지의 포기를 넘어 그분 안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도회 입회 전 가르멜 수사님들 공동기도 시간에 참석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오늘 이 아침까지 기도 시간이 반가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때도 사실 호기심과 신비감 때문이었지 정말 기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느님을 믿고 신뢰함은 나의 바람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일 수 있다. 연인의 사랑이 뜨거울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앞뒤 따지지 않고 그에게 헌신하는 것처럼 하느님 사랑도 마치 술에 흠뻑 취한 것처럼 모든 감각을 잃게 만들고 모든 걱정 불안 유혹은 내 안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이 사람의 믿음에 대해 감탄하신 적은 두 번이다. 하나는 딸을 살려달라고 청했던 한 이방인 여인의 고백을 들으셨을 때고(마태 15, 22-28), 나머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을 치료해달라고 청했던 백인대장의 고백을 들으셨을 때였다. 그 여인은 주인이 밥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강아지처럼 예수님께 자신을 맡겼고, 백인대장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인답게 예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 두 사건 모두 예수님과 병자 사이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둘 다 병이 나았다고 보도한다. 믿음의 결과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그렇게 간절한 청을 예수님이 들어주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 믿음과 신뢰를 철회하거나 그것이 증오로 바뀌었을까? 그랬다면 그것은 거래이지 믿음과 사랑이 아니다. 글쎄, 이게 답이 될지 모르겠는데, 그들은 다음에 다시 한번 청하거나 밥을 제때에 주지 않아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는 강아지처럼, 죽게 되는 명령이라도 따르는 군인처럼 예수님께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거니와 그분 곁을 절대 떠나지 않을 거다.
예수님, 시련은 싫지만, 그것 없이 제 믿음은 순수해지고 굳건해지지 않습니다. 애쓰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그런데, 그렇게 시련을 겪는 저희와 함께 계신 주님은 훨씬 더 힘드실 겁니다. 생명을 포함해 다른 건 모두 잃어도 믿음은 잃지 않을 겁니다. 주님을 뵙는 날에는 그마저도 필요 없게 되겠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더 순수하고 더 굳건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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