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9월 17일 돈을 따라다니지 마십시오.(+MP3)

나해 9월 17일 돈을 따라다니지 마십시오.

첫 소임지는 재개발을 앞둔 서울 달동네였다. 동네 한가운데 전셋집을 얻어 살았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동네 교우들과 몇몇 봉사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에 서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었다.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부분 세입자였던 동네 교우들은 이사 걱정을 했다. 실제로 그것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보증금과 이주비로는 반지하 방 한 칸도 구할 수 없었다.

나도 함께 고민했다. 하지만 강론 때는 하느님이 당신의 양들을 길거리서 굶어 죽게 하시겠느냐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모두 돌아간 후 밤에 기도했다. ‘주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말만 호기롭게 했지 대책이 없네요. 저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 후 모든 교우들은 자기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괜찮은 양로원에, 가족들은 영구임대주택이나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공짜 전셋집에 그리고 한 분은 하늘나라로 이사 가셨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 걱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교우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티모 6, 7-8).” 그리고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 10).” 예나 지금이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따라다니는 게 문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다. 돈도, 사람도, 세력도 그리고 목숨도 그러셨다. 그분의 삶은 오직 하느님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른다. 돈을 따라다니지 말라는 가르침은 부자나 수도자들에게 해당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 같아 여기에 적기 주저했다. 하지만 이는 복지나 행운이 아니라 우리 정체와 믿음 이야기다. 우리는 예수님이 알려주신 아버지 하느님을 믿고 그분이 우리를 다스려주시기를 바란다. 믿음과 돈은 아무 관계가 없다. 믿음은 생명이다. 돈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따라오는 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돈 걱정은 조금만 하고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한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한다(1티모 6, 11-12).

예수님, 주님을 세상에 증언하라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을 하는 게 거룩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말을 믿는 어린이처럼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믿고 따릅니다. 잘 안 돼도 끝까지 그렇게 할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말씀하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삶이 저의 일상이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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