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0월 6일 구원의 도구(+MP3)

나해 10월 6일 구원의 도구

기도는 말을 많이 하거나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과 나누는 복음적인 우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과 친해지려는 노력이다. 예수님께 하느님은 아빠, 아버지였고 하느님께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이고 마음에 드는 아들이었다. 두 분은 완전히 사랑하고 신뢰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땅으로 보낸 아들을 믿고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고, 아들은 목숨까지 내놓으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렸다. 그래서 두 분은 하나였다(요한10, 30).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는 반말했던 것 같다. 그 반말은 존경의 거리감을 없애버린 친밀이고 또 신뢰였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으면 정말 좋겠다. 사실 어렸을 때 ‘엄마~’하고 부르면 모든 게 해결되었으니 엄마가 나의 하느님이었다. 반면 신부님이 알려준 하느님은 경찰 아저씨고 숙제 많이 내주고 숙제 검사 하는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이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하느님을 알게 됐다. 예수님 눈에는 하느님이 보였는지 그분의 말씀이 귀에 들리셨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죽는 날까지 그분을 뵐 수 없을 거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소통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사랑한다. 예수님을 주님, 형, 오빠, 친구 등으로 부르며 그분과 친해지려고 한다. 예수님과 친해지는 만큼 하느님과 친해진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쯤이면 기도가 좋아지고 자연스러워질까? 아직도 어떤 핑계를 대고서라도 기도를 빼먹고 싶고 기도는 언제나 숙제처럼 느껴진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 꿀보다 달고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서 밤새 깨어있다는데 나는 여전히 묵상은 지루하고 분심과 잡념으로 샛길로 빠지지 않은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니 수도원에 마귀들이 우글거린다는 말이 진짠가 보다. 그런데도 목숨을 바쳐 예수님과의 우정을 버리지 않은 순교자들과 성인들이 끊이지 않고 생겨나는 걸 보면 그렇게 엉터리로 기도해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게 분명하다. 하느님을 엄마보다 더 가깝게 느끼지 못해도, 재미없고 지루해도 계속 기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말거다. 기도는 구원의 확실한 도구이다.

예수님, 주님과 친해지면 주님처럼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유혹입니다. 죄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저는 제 십자가만 잘 지고 주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과 더욱 친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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