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0월 8일 예수님 편에서(+MP3)

나해 10월 8일 예수님 편에서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어떤 주술이나 싸움도 없이 ‘당장 그에게서 나가라.’는 말 한마디로 그것들을 단박에 쫓아내 버리셨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그것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단호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것들은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거친 풍랑도 말 한마디로 가라앉히시던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만은 한 유행가 가사처럼 한없이 작아지셨다. 손녀의 요구라면 무조건 들어주는 손녀 바보 할아버지 같았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거나 그들을 꾸짖기는 하셨지만 그들을 내치거나 쫓아내 버리지 않으셨다. 논쟁과 꾸지람은 그분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 요구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주지는 않으셨지만, 그들을 설득하셨다. 치유와 구마가 필요한 작은 이들뿐만 아니라 당신을 삐딱하게 보는 이들도 모두 구원받아야 하는 아버지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마귀들은 단번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지만,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예수님은 치유와 구마의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하셨다. 사람들은 기적들을 목격하고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권위 있는 가르침을 들었으면서도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그분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누가 들어도 억지다. 적군을 싸움으로 쳐부술 수 있지만, 그 전에 그들이 분열되면 그들 스스로 멸망하는 거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했을까? 보고 들었으면서도 그분을 믿지 않게 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마귀들에게는 보이는 그분의 참모습, 인성 안에 있는 그분의 신성이 사람들 눈에는 가려져 있었나 보다.

그때 사람들과 오늘의 나는 다른가? 복음서의 이야기는 오늘 여기서 사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삶과 별로 상관없는 수학 공식이나 어떤 이론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나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나? 저 사람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나?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분을 맞아들여야 한다. 그분은 나를 섬기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내 앞에서만은 한없이 작아지셔서 아기가 되고 종이 되고 죄인이 되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 편에 서서 주님 뒤를 따라갈 겁니다. 이리떼 속의 양들처럼 물리고 잡아먹혀도 그들에게 맞서 싸우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주님 양들의 무리 속에 끼어 묵묵히 주님 뒤만 따라갈 겁니다. 험담과 불평으로 스스로 상처 입지 않을 겁니다. 세상의 거짓과 폭력으로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서로 치료해주고 위로할 겁니다. 넘어져도 또 일어나서 끝까지 주님을 따를 겁니다. 제 안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죄의 유혹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니 주님께 드립니다. 그것들을 가져가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교회나 수도원은 다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실망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그럴수록 아드님과 더 친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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