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0월 24일(연중 제30주일 전교주일) 십자가의 승리(+MP3)

나해 10월 24일(연중 제30주일 전교주일) 십자가의 승리

가장 큰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반대하고 모함하는 이들에게 맞서 싸우지 않고 승리하셨다. 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셨으니 패배한 것으로 보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으니 그분은 승리하셨다. 예언하신 그대로 되었다. 주님의 부활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세상에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분의 승리를 선언한다. 주님 십자가의 승리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부활의 증인이다. 그분의 영이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난 이들의 영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고 주님처럼 부활한다. 세례성사로 육의 법칙을 따르던 옛 인간은 죽고 주님 영의 법칙을 따르는 새 인간이 탄생한다. 갓난아기가 성장하여 어른 몸이 되는 것처럼 우리 내적 인간도 성장해서 예수님의 몸이 되어 간다. 힘으로 복음을 전하고 폭력적으로 개종시키려는 이들은 다 망한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그들을 칼로 막으려고 했던 이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 52).” 예수님도 힘으로 싸우고 이기는 법을 아셨다.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주실 줄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는 그 뜻을 이룰 수 없고 인류를 구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랑의 승리가 될 수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굳이 구세주 예수님의 거룩한 삶이나 성인들의 일화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화와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최후의 승자는 사랑하는 사람이고 사랑만이 사람을 얻을 수 있음을 안다. 이 승리하는 사랑 안에는 좋아하는 감정의 영역은 너무 작아서 없다고 해도 괜찮다. 그 대신 그 안에는 친절, 관용, 용서 그리고 인내 같은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중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노력보다는 자기 버림과 죽음 정도는 바쳐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주님 뒤를 따르려고 마음의 피 흘림을 넘어 실제로 주님처럼 피를 쏟았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존재로 바뀌고 그다음으로 하느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필수과정이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구하려고 배교한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예수님은 좋은 삶과 윤리적인 삶의 모범 그 이상이다. 그래서 그분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걷거나 최소한 그 앞에서 갈등하게 된다. 바보처럼 말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 4).” 이사야 예언자는 인류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세상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이런 예언을 한지 벌써 수천 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싸운다. 과연 그런 날이 정말 올까? 아니다, 의심하지 말자. 내 안에 이런 의심이 이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수난과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나무랄 것까지는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열한 제자 중에 더러는 엎드려 절하면서도 의심했었다니 말이다(마태 28, 17). 다퉈서 이겨봐야 승리의 기쁨보다는 상처의 아픔이 훨씬 더 크다. 십자가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속상함, 아픔, 상처가 항의나 복수의 시작이 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오히려 훈장처럼 그리고 주님 사랑의 불을 지피는 나무처럼 여긴다. 그렇게 나는 주님의 사람으로 변모된다.

예수님, 시간이 정말 빨리 갑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험담, 불평, 미움, 복수 같은 것들로 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것들의 공격에 자주 무너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 부활의 능력으로 저를 보호해주시고 그 힘을 나누어주시어 그것을 이기게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아드님을 따르는 데 필요한 양식으로 바꾸어주소서. 아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