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0월 30일 내려가자(+MP3)

나해 10월 30일 내려가자

잔칫집에서 높은 자리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래도 주인집 식구들이 원하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줘야 하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 불편한 자리를 좋아할까? 아마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일 것 같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모으는 이유도 그와 비슷할 거다. 높은 자리와 좋은 대우가 잠시나마 인정받고 칭찬받고 안전하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이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거다. 행복한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느낌이지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칭찬과 인정에 인색하고 불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적다.

행복한 느낌보다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런 감정은 작은 행운이나 뜻밖에 받은 가벼운 선물 정도로 여긴다. 나의 참된 행복은 하느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행복하게 사셨다고 믿는다. 연인과 부부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에게 없는 것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언제나 혹은 내가 원할 때마다 내 곁에 있을 수 없다. 그는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수 없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고 그분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분이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이 곧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주님은 내가 가장 어렵고 괴로울 때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나를 도와주시고 위로해주시며 당신이 동행하신다고 알려주신다. 그리고 그때 내가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알게 해주신다. 나를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보고, 보이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관계, 사랑하는 이와 이별 등 여러 고통이 있지만, 그중에 어찌해볼 수 없는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내적인 상처와 그로 인한 죄스러움일 거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모으고 채우고 쌓으며 높이 오르려고 하는지 모른다. 마치 그것이 최고의 선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봐야 그것들은 결국 다 남의 것이 되고 나는 조그만 항아리 하나도 못 채우는 재가 된다. 이 진흙 인형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하느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것만큼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은 없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믿는다. 그분은 내가 바라야 할 것을 알고 계시고, 내가 비참해질 때에 내 옆에서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행복은 높은 데가 아니라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 봐야 거기에 하느님은 안 계십니다. 이미 땅으로 내려오셨고 제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무덤까지 들어가셨으니 주님은 참으로 아니 계신 곳 없이 어디에나 계십니다. 고통을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고 가난한 이들과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수난과 죽음의 예고를 들은 아드님에게 하신 것처럼 저를 안아 아드님을 따라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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