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1월 20일 건너감
죽음은 정전 같은 것이다. 영화화면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바라고 원해도 그 영화는 계속되지 않는다. 죽음은 깊은 수렁 또는 높은 장벽 같아서 여기 것을 지니고 건너갈 수 없다. 소유물뿐만 아니라 여기를 지배했던 모든 법과 제도 그리고 삶의 방식도 그것을 건너가지 못한다. 여기는 죽음에서 다 끝난다. 저기서는 여기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있고 그곳의 법이 지배한다. 여기서는 모든 게 자주 바뀌고 변하지만, 저기는 세상 창조 때부터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이 믿음이다. 그것으로 깊은 수렁을 건넌다. 그것을 많이 가질수록 건너감이 수월하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저세상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그분 말고는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 덕분에 하느님을 제대로 알게는 됐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것들로는 당신조차도 하느님을 온전하게 알려주실 수 없었다. 그래서 비유로만 설명하셨고 그저 믿기만 하라고 하셨다. 믿음은 여기와 저기를 이어준다. 우리는 여기에 있지만, 저기를 바라고 가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워한다.
저기서는 믿음도 필요 없다. 믿은 모든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을 예수님은 이미 보고 알고 계셨다. 그분은 여기서도 그것에 따라 사셨다. 아버지 하느님이 그분을 직접 다스리셨다. 그래서 여기서는 많은 게 그분에게 맞지 않았고 세상은 그분을 불편해하고 미워했다. 그분을 따라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뭔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여기와 맞지 않아서 고통을 겪는 거다. 순교자들은 국법을 어겼고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한 거다(마태 22, 29; 마르 12, 24).
죽음은 알지만, 그 이후는 모른다. 그러나 믿는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 그 사랑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 법을 따르느라 수고하고 고생도 하겠지만 저기서 받게 될 상과 영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실 수고와 박해받음으로 이미 여기서 행복하다. 그들이 괜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일부러 고생하고 박해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거기에 뭔가 있으니까, 뭔가 좋고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맛봤으니까 계속 그렇게 사는 거다. 믿는 이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건너감이고 그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영원히 살기 시작했다.
예수님, 성찬례 때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어 영광송을 합니다. 주님이 가장 높은 분이라고 저희는 성당이 무너질 정도로 큰 소리로 아멘 합니다. 저희에게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게 최고지만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저는 가장 높은 분께, 그렇게 큰 사랑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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