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1월 21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종들의 왕국(+MP3)

​나해 11월 21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종들의 왕국

좋은 지도자를 만남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그는 나를 무리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세상에 오직 하나로서 나를 만나고 안다. 높은 사람이지만 가장 낮은 자로서 나를 섬긴다. 그래서 그를 신뢰하고 기꺼이 그에게 복종한다. 때로는 달갑지 않은 그의 요구도 받아들인다. 잘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공동선을 위한 것일 테고 결국에는 나에게도 좋은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모는 다 알 거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부모는 자식보다 높지만 실제로는 평생 그의 종으로 산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자식 앞에만 서면 부모는 한없이 작아진다. 이기적이고 교만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참 궁금하다. 하지만 그 영광스러움과는 달리 좋은 부모의 속은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다 타서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다. 그렇게 자식은 부부를 부모로 만들고 또 좋은 부모가 되라고 끝까지 요구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아버지를 세상에 알리시며 우리도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왜 하느님을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과 무서운 심판관으로 여기는지 참 모를 일이다. 수도원 입회해서 지금까지 여전히 가장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이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머리는 알아듣지만, 마음은 아직도 의심한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 시켜 구원받게 그리고 섬김을 받음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선언하신 그대로 그분은 정말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사람들의 종으로 사셨다. 그분이 곧 아버지 하느님의 얼굴이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예수님처럼 우리를 섬기신다. 외아들까지 넘겨주셨으니 하느님은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철저하게 섬기신다. 그분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이다. 아니 훨씬 그 이상이다. 예수님은 우리도 당신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니셨던 그 마음을 간직한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 2,5-8).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낮아져서 높아지고 다 비워서 완전해진다.

주님의 헌신과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몸은 굼뜨고 손끝은 여전히 차갑다. 물처럼 작아져야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을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 차지한다. 하느님은 우리 양식이 되기까지 낮아지셔서 우리 세포 속까지 들어가신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를 차지하신다. 그렇게 우리를 다스리신다. 세상 어느 종교에 이런 신이 있을까! 예수님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고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요한 18,36).”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는 이웃을 섬기는 종이라서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진실과 가장 작은 이들 편에 섰다가 반대 받는 표적이 되고 심하면 죄인이 된다. 그렇게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우리 불완전한 인간성을 완성해간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세상을 차지하고 다스린다.

예수님, 주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이는 주님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실 것이라는 바람도 아니고 순교자와 성인들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고백도 아닙니다. 주님은 하느님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응시하시는 곳을 저도 따라 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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