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다해 12월 31일 주님의 천막(+MP3)

** '리오신부의 영원한 기쁨' 복음묵상은 2021년 12월31일로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다해 12월 31일 주님의 천막

몇 해 전 큰 바람에 과일나무가 쓰러졌다. 죽을 줄 알았는데 그런 채로 새 가지를 내서 또다시 무성해졌다. 새끼 고양이가 앞다리를 다쳤는지 관절이 퉁퉁 부어 땅을 딛지 못하고 절뚝거렸다. 저러다 죽을 줄 알았는데 한두 달 지나니 숲속을 뛰어다닌다. 자연의 회복력과 생명력은 놀라워 두려울 정도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자 하나도 없다(신명 32, 39).”

창세기는 하느님이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바로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사셨다. 요한복음은 그분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σκηνοω).’라고 썼다(요한 1, 14).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유목 생활을 하던 때, 광야를 헤매며 약속의 땅을 찾아가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은 그 천막에 머무르셨고, 그들이 갈 때 함께 가셨고 그들이 머무르는 곳에 함께 머무르셨다.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나 그리고 우리 안에 그렇게 사신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의 모델이고 하느님이 빚어 만드셨던 인간의 본래 모습이라고 믿는다면 인간은 이타적이었다는 뜻이다. 고향이 생각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고, 멀리 있는 손자들이 눈물 나게 보고 싶고 이것저것 다 막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괴로운 것은 우리가 본래 이타적인 존재였다는 흐릿한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은 완전히 이타적으로 사셨다. 남김없이 다 주셨다. 그분은 그렇게 완전한 인간, 하느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연은 말씀만으로 만드셨지만, 인간은 세 분이 함께 당신의 모습을 따라 손수 빚어 만드시고(창세 1, 26) 당신의 영을 불어 넣으셨다(창세 2, 7).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다. 신앙은 이걸 알려주고, 세례성사로 하느님이 내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천막을 치셨다. 그분은 내가 어딜 가든 함께 가시고 어디 머무르든 함께 머무르신다. 죄의 현장에도 계시고 지옥 같은 절망 속에 갇혀 있을 때도 내 곁에 계신다. 옛날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생명을 무시했지만,(요한 1, 5) 그분은 내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성인(聖人)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수도 생활은 세상살이의 회피처가 되고, 예수님처럼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신앙은 삶의 또 다른 장식물이나 번거로운 의무다. “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 ,1).”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

예수님, 성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사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본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그렇게 된 이들입니다. 저도 그 길에 서 있습니다. 여전히 같은 잘못과 죄를 반복하지만 넘어져 무릎을 깨 절뚝거려도 끝까지 이 길을 따라 걸을 겁니다. 그러니 가끔 오늘처럼 주님의 천막으로 들어가게 불러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스라엘에게는 거룩한 천막이 있었고, 교우들에게는 성당이 있고, 제게는 이 이콘이 있습니다. 이 이콘만 있으면 저는 길을 잃거나 이 순례를 포기하게 되지 않습니다. 저를 끝까지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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