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7월28일 연중 제17주일 복음묵상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루카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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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1독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을 보신 하느님께서 두 도시를 멸망시키실 것을 결심하신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타협에 들어가려 한다.
소돔에 오십 명의 의인이 살고 있다면 그 손을 멈추시겠냐고 묻는다. 하느님은 그러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아브라함은 다섯이 모자라는 사십오 명이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묻는다.
그래도 멸망을 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하느님께서 하신다.
그러자 또다시 아브라함은 사십 명, 삼십 명, 열 명으로 그 숫자를 줄여가면서 하느님의 의도를 묻는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단 열 명의 의인이 있더라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대답을 얻어낸다.
하지만,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없었던 소돔은 멸망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성서적 설화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시대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전하는 커다란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세 가지를 생각해본다.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아브라함의 마음이다.
아브라함은 자신과는 직접적으로 그 어떤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간절히 부탁 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락한 도시에 찾아올 하느님의 징벌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이 잘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의인의 숫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줄여가면서 가능하면 사람들이 징벌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그 절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요즈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교회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들이 너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심을 보이는 경향이다.
복음이란 특정의 개인이나 특정 무리를 위해서 전해진 기쁜 소식이 아니다.
공동체적이고 모든 이에게 열린 기쁜 소식이다.
나 혼자라도 구원을 받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복음적인 것과 거리가 먼 발상이다.
세상의 고통과 교회가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속이라는 단어를 무척 싫어한다.
세속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세상을 갈라놓고 바라보려는 시각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한, 깊은 산속의 절간도, 관상수도원도 모두 세상 안에 있다.
하여 관상 수도원에 있는 수도자들이 하는 가장 큰 기도 중의 하나가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인 것이다.
신앙은 함께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외면한 채 신앙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원하신다.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타락한 도시를 벌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뜻하는 것은 최대한의 인내심을 이 세상에 보이신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 삶을 돌이켜보아도, 하느님께서는 늘 나에게 뉘우침과 사랑하면서 살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확신하건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가 잘 사는 것을 기다려주실 것이다.
이에 우리는 반드시 응답해야만 한다.
그것이 복음을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여야만 한다.
세 번째 드는 생각은 세상의 죄와 그 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가 믿고 인정한다면 악마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
악마의 존재 이유는 악을 만드는 것이다.
그 악은 보통 사람들의 이기심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국 우리의 삶에는 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복음은 악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즉 희망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복음적 기준으로 선과 악을 식별하고, 식별한 결과대로 악과 싸우면서 선을 이루어 나아가려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여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바람과 의지가 선을 향한 것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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