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0804 연중 제1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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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8월4일 연중 제18주일 복음묵상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루카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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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이다.

이 비유를 만나 완전히 방향을 바꾼 삶을 살아 성인이 되신 분들도 있다.

 

사실 이 짧은 비유는 너무도 기본적이고 확실한 지혜를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문제는 삼척동자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진데, 이 비유가 전하는 지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다는 것이다.

알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우리의 욕망이 크다는 뜻일 게다.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루카12,19)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라는 대목이다.

인간의 전형적인 이기심이 잘 드러나는 구절이다.

욕망의 한 가운데에는 반드시 내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한 가운데에는 ‘나’라고 하는 ‘내 자신’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의 끝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만 한다.

그 욕망의 실체가 무엇이고 결국 그 욕망이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욕망은 대체로 감미롭고 자극적이며 재미있고 풍요로운 것을 대상으로 한다.

손에 넣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창세기 설화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이 하느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선과 악을 구별하는 과일을 따먹은 것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욕망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어리석어질 수 있다.

이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덧없음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식별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을 위해 진정으로 옳은 것을 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끝이 어둠이나 악이라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간단명료하게 지혜와 어리석음, 허상과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우리의 응답도 간단명료해야 한다.

“당신의 말씀이 옳기에 저는 그렇게 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은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떠나는 것(空手來空手去)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세상에 나왔고, 삶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만든 모든 흔적을 가지고 그분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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