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8월29일 연중 제21주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목요일 복음묵상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마르코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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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 관한 묵상은 지난 2월8일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반복되는 죄에 대해 생각해보렵니다.)
‘반복되는 죄’라 함은 사실 우리 모두가 나이라는 세월의 짐을 인정할 수록 쉽게 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러한 느낌은 무척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본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분 앞에 나아갈 때까지 우리는 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영의 소유자였던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늘 입에 달고 산 기도 구절이 시편의 말씀 “주여!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내 죄를 없이하소서.”이었음을 보면, 올바른 죄에 대한 통찰은 남의 평가나 그 어떤 법적인 객관적 잣대를 요구하지 않는 것 같다.
반복되는 죄로부터의 해방은 사랑의 체험에서만 가능하다.
사랑에 의한 용서체험,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반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약함이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반복되는 죄라 함은 참된 통회의 결핍이나 면역되어 무디어진 양심의 결과이다.
또한 희한하리만치 빨리 돌아가는 자기 합리화라는 자기제어의 메커니즘도 한몫을 한다.
참된 뉘우침이 없다면 절대로 반복되는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체험한다.
참된 뉘우침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징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고, 완덕에 이르고자 하는 초조함도 아니다.
그것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분, 그리고 그 사랑에 매료되어 나 역시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마음에서만 가능하다.
약함은 인정되어야 아름답다.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의탁하는 마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약하다. 그리고 늘 넘어진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죄가 신물 나게 싫다면 그 약함을 정당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약함 안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은총, 그리고 그 약함을 이겨내려는 자기 싸움 안에서 구도자의 길이 조금씩 갖추어져 간다.
비겁할 수 있다. 치졸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만큼 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신앙은 구체적인 마음의 변화를 요구한다.
반복되는 죄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다.
약함을 인정하되 그 인정이 주저앉음이나, 어쩔 수 없는 인간실존의 조건을 뜻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투자 없이 어떤 것도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는 고백을 죄의 반복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참된 회개의 체험만이 그분의 뜻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반복되는 죄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분의 사랑은 한이 없다는 말, 그 말이 어렴풋한 머리에서 나오거나 그리고 자신의 약함을 정당화하는 말이 아님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그분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듯한 열정, 바로 그런 사랑에서만 가능한 말이라는 것을 묵상해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죄 안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반복되는 죄 안에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싸우고 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용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주여!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내 죄를 없이하소서.” (시편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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