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0922 연중 제 2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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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22일 연중 제 25주일 복음묵상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루카16,8)

 

오늘 복음을 읽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신 진의는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약삭빠르고 도덕적이지 못한 집사를 두둔하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상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하고는 상반된 내용을 말씀하시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숨겨진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감히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자녀와 빛의 자녀라는 표현을 쓰셨다.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앞날을 생각하고 현재를 결정하려 한다.

살길을 찾는다는 말이다.

사실 오늘 약삭빠른 집사가 보여준 행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를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을 현명한 사람들로 인정하려는 세상 분위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자녀들에게 빛의 자녀들이 배울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세상의 자녀들처럼 빛의 자녀들도 앞날을 생각하고 현재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복음적 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다.

즉, 복음적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복음적 기준으로 앞날을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빛의 자녀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빛의 자녀들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의 기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신다.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앞날을 위해 현재를 살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모습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세속적인 기준과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악의 세력 역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온갖 유혹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살면서, 때로는 그로 인해 가슴을 치며 복음적 진리에 마음 아파한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옳은 선택과 항구한 걸음을 위해 할 일은 스스로와 싸우는 것밖에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중 하나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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