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1117 연중 제3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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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11월17일 연중 제33주일 복음묵상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21,19)

 

연일 종말에 관한 말씀이 복음말씀으로 선택되고 있다.

종말이 다가왔음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을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잘 이해하는 묵시문학적인 표현으로 종말 전조에 대해 말씀하신다.

 

가짜 그리스도들이 나타나고, 민족간의 대립과 전쟁, 큰 지진, 기근과 전염병이 생겨난다 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들은 항상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일어난 일들이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너무 친근하리만치 경험하고 있는 상황들이 아닌가?

세상의 어수선함을 틈타 늘 사이비 사기꾼들이 등장했고, 어처구니 없는 집단을 만들어왔다.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는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힌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지진이나 태풍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는 빈곤과 기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하나의 병을 극복하면 또 다른 병이 생겨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의 타락상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교회는 너무도 많고 긴 박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어디선가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도 종말의 조짐에 관한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어쩌면 인류는 종말의 시간을 끌어당길 수 있는 악을 만들어가면서 역사를 채워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반면, 악에 굴하지 않고, 선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투신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거룩한 희생, 그리고 그저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며 살다간 아름답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았으면 한다..

분명 인간의 이기심과 타락이 더 할 수 없이 커졌을 때 우리는 세상의 끝을 경험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멸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다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실 것이다.

지금도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계신지도 모른다.

복음이라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그로 인한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어수선하면 어수선할 수록 더욱 힘을 내서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으로 누군가가 또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삶을 제대로 살다가, 제대로 된 세상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만 한다.

 

그날은 하느님만 아신다고 한다.

어쩌면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세상 안에 있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말씀인지도 모른다.

 

묵시문학(默示文學)이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세말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문학양식이다. 단지 자신의 민족의 존폐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끝 즉 종말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을 주제로 한 글들의 모음이다. 구약의 다니엘서나 신약의 요한 묵시록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함께 산책하시는 박 용기 선생님께서 담으신 것입니다. 작품사진을 사용하게 해주심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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