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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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8월29일 금요일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복음묵상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마르코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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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의 순교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상 헤로데가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헤로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목을 베게 한 요한의 얼굴이었습니다.

듣기 거북한 말도 거침없이 해대던 요한.

임금의 권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내뱉어댄 요한.

한마디로 눈에 가시였습니다. 하지만 두렵고 존경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자라온 환경 탓에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구석도 있던 헤로데는 요한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경의의 마음마저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목을 쳐야만 했던 자신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오게 된 경위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친 이유였습니다.

 

‘맹세를 지키겠다는 심정’은 그나마 하느님 두려운 지를 안다는 이야기거나 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손님들 앞이라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체면(體面)과 신의(信義)를 같은 말로 이해하는 인간이었다는 말입니다.

 

너무 쉽게 헤로데를 비웃지 말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헤로데의 모습은 우리 안에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수의 폭력에 비굴해지는 마음.

뒤돌아보면 그리 하찮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수없이 미워했던 마음들.

죄의식에 괴로워하면서도 늘 유혹에 지고 마는 약한 의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이렇게 한심한 구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의 비겁함이, 우리의 잘못된 감각이 세례자 요한으로 상징되는 정의(正義)의 목을 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언제라도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만 합니다.

 

물론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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