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3월5일 사순 제 2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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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부자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형제들에게라도 자신과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여 라자로라도 보내서 자신의 형제들에게 경고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로 거절을 합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표현을 쓸 때, 그 표현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믿음이 가능할 때 올바른 관계는 만들어지고 유지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상 가장 성취하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 누구와도, 미워하는 그 누구와도 결국은 헤어질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삶을 엉터리로 만들고,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흔한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믿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스스로 의식을 피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잘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진실을 항상 의식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를 의식화(意識化)라고 합니다.
건강한 믿음, 신실한 믿음은 바로 이 진실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서만 허락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어려움에 처해진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는 믿음, 그것은 진실에 대한 믿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진실을 못 보는 이들, 진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간에 비유의 부자처럼 살다가 끝을 맺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코10,25)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 건너의 삶은 이 삶에 달려 있음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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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태웅 안토니누스 형제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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