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2월 22일 가난한 마음

이종훈

12월 22일 가난한 마음

 

한나는 절규하듯 하느님께 청했다(1사무 1,10). 엘리사벳도 임신 확인 후에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5).”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도 한나만큼이나 절절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시대에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의 내적 고통은 정말 컸나보다. 그들은 모두 그 부분에서 철저히 가난했고,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한 남편의 부인으로서 비참했을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의 절규를 들으셨고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렇게 얻은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율법에 따라 맏아들을 주님께 바쳤는지(탈출 13,12)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어쩌면 그들이 청했던 것은 아들이 아니라 그들이 받고 있는 치욕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 그런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실제로 아들을 낳고나니 그 아들이 아니라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을 더욱 가깝게 느끼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아들은 더 이상 간절한 바람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아들을 주신 하느님이 간절한 바람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마리아는 달랐다. 아직 가정생활을 하지도 않은 그가 그 두 여인처럼 아들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었을 리 없다. 그는 엄청난 모험을 시작했다. 하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일에 참여했다. 그것은 세상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지극히 고독한 결정이었다. 마리아의 가난은 이것이었고 그 절대적 고독의 원인은 하느님이었다. 그가 느낄 수 없는 하느님을 품고 천사의 말을 따라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동안 그의 마음은 참으로 어두웠을 것이다.

 

 

엘리사벳의 증언(루카 1,42-45)을 듣고 그분의 어둠은 완전히 바뀌었다. 혼란과 내적고통의 해소를 넘어 미래에 대한 확신까지 갖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1-55).”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자리 그 시간에 마리아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자신의 동의가 아니라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성실하신 하느님 때문이다(1코린 1,9).

 

 

그런데 그런 마리아도 아드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예상하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그것을 내다보셨다면 한 인간으로서 그런 희망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 어려우셨을 것 같다. 차라리 모르셨던 것이 더 좋았다. 우리는 하느님의 집을 찾아가는 영적인 여행을 하는 중이다. 이는 곧 믿음의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믿음은 시련을 받으며 더 굳건해지고 순수해진다. 우리는 이 여행길에서 길을 잘못 들고 넘어지며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진실, 정의, 사랑이 박해받을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런 도전들은 성모님이 겪으셨던 절대적인 고독에 비길 수 없다. 그런 분이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마지막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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