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재의 수요일) 은혜로운 불공정 약속
시간이 참 빠르다. 기억력이 나빠지는 걸까? 아니면 삶에 더 익숙해지는 걸까? 뭔가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빠르게 지나는 세월이 야속하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속인간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 수 있을까?
자애심과 이기심의 노예생활로 여전히 똑같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도시간은 아직도 반갑지 않다.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안쓰럽지만 가엽게 여기는 그 마음과는 달리 내 주머니를 열어 시간과 돈을 내어주는 것이 아직도 자연스럽지 않다. 부끄럽다.
언제나 왠지 모르기 부담스러운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염치없이 또 작은 극기와 희생을 결심한다. 또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한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그 마음을 하느님은 아신다. 나와 하느님, 단 둘만 아는 작은 약속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니 남에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4.6.18).” 예수님이 이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약속은 나는 제대로 잘 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실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이 마음만 어여삐 보아주신다는 것이다. 이 불공정한 약속 말고는 희망이 없다. 그 희망이 이 사순시기를 은혜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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