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월 9일 뺄셈
‘답정너’란 줄임말이 있다. 답은 정해졌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뜻이란다. 이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 같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상대방이 그 대답을 하게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하느님은 ‘답정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비롯해 많은 성인이 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인생을 봉헌했다. 내 믿음이 그렇고 그분들은 그 증인이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걸지 못한다. 내 안에 믿음과 불신이 늘 함께 있는 것처럼 나의 봉헌과 헌신에는 늘 어떤 조건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인생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내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거기서 나 자신도 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빼내어진다. 두려운 일이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 인생이다. 외로운 인생 순례에 가족과 친구들이 고마운 동반자가 되어 주지만 그들은 내 안에 있는 허전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하느님만이 다 채워주신다. 허전함 그 자체를 없애주신다. 하느님이 나에게 ‘답정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서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사이에 갈등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요한의 제자들은 후발주자인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가는 것을 보고 언짢았던 것 같다(요한 3,26).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반면에 요한은 크게 기뻐했다. 바로 그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고 그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은 그분은 커지고 자신은 작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요한 3,30). 그의 기쁨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 안에 있었다. 하느님이 없다면 인생의 마지막 뺄셈은 제로가 된다. 나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참 좋으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러니 내 뺄셈은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예수님, 아직도 다 내놓지 못하는 자신이 참 어리석고 불쌍합니다.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위로합니다. 위로는 휴식입니다.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까워하지 말고 잘 빼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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