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월 15일 얘야
그 중풍 병자는 친구들에 의해 뜯긴 지붕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데 예수님 앞으로 내려졌다(마르 2,4). 얼마나 창피했을까. 죽고 싶었을 것 같다. 병은 곧 죄였으니 그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고스란히 다 드러내 보였던 셈이다. 그가 원한 건지, 친구들이 막무가내로 그렇게 무리한 행동을 한 건지 모르지만 그 순간 그는 친구들이 원망스럽고 자신이 그 자리에서 없어지기를 바랐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을 묻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잘 묻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 중풍 병자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으셨다. 사실 이미 다 드러났는데 증상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도 묻지 않으셨다. 단지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라고 선언하셨을 뿐이다.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그 여인에게도 죄를 묻지 않으셨다(요한 8,11). 그 말씀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용서가 아니라 ‘얘야’였을 것 같다. 자녀에게 하듯이 다정하게 그를 부르는 그 호칭은 이미 용서를 담보했다. 그리고 그 용서에는 위로, 치유, 격려, 회복이 담겨 있었다.
그런 기적은 믿음이 만들었다. 중풍 병자가 아니라 그 친구들의 믿음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마르 2,5).” 그들의 고민, 결정 그리고 수고가 그들의 믿음이었다. 사목은 그런 것이다.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그를 들것에 눕히고, 데려오고, 지붕을 뜯어내고, 조심조심 그를 내려보냈다, 예수님 앞으로. 말 많은 사람들, 칭찬에는 야박하고 비난만 일삼는 그들의 눈총을 온 몸으로 받으며 그렇게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를 온전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고는 믿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바랐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을 거다. 그런 의심이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아픈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그들의 최선이라고 믿었을 거다. 그들의 믿음도 완전하지 못했다. 그런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셨다. 아픈 친구는 회복됐고 그들은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주님,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은 이제 세상 어디에나 다 계십니다.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성당 문이 닫혀 있어도 저희는 주님께 접속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고 심지어 미신적인 믿음에도 주님은 응답해주십니다. 저희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니 그런 수준의 믿음밖에 없음을 주님은 잘 아십니다. 저희를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시니 아드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바른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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