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흔들리지 않고 더 순수해지기 위해서
오늘 복음 말씀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 비유 이야기다(루카 18,1-8).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사람들은 세상이 금방 끝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알려 준 대로 주님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사도 1,11).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 당시 제자들은 무척 실망했을 것이고 오늘날 교우들도 그 내막을 알고 나면 믿음이 흔들릴 것이다. 그렇게 실망하고 불안해하는 그들은 이 비유를 들었고, 오늘날 흔들리는 우리들도 같은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기로 새롭게 결심한다.
코로나가 길어야 서너 달이면 사라질 줄 알았다. 2년 전 판문점에서 남북 두 정상이 부둥켜안고 평화선언을 할 때는 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실망을 넘어 기도는 아무 힘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기도하는 마음이 혼란스럽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기도 말고는 달리할 게 없어서 기도하는 것인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게 기도인가?
그 이야기에서 과부는 그 불의한 재판관에게 매달렸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그 재판관이 불의한 줄 알았지만 그 과부에게는 그의 판결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 재판관의 속내를 새겨들으라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 18,5).” 그렇다, 그 재판관은 좋은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혹은 사람들이 아우성친다고 이상한 판결을 내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과부가 바랐던 것은 그와 그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었다(루카 18,3).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아니었다.
우리는 믿는다, 하느님만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신다고.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한다. 내가 올바르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달라는 청원도 아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내 믿음, 주님이 계명이 진리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더 순수해지게 하려고 기도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을 만날 때 당신 앞에 내놓을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님, 저의 이 약한 믿음은 늘 도전을 받아 흔들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고 기도하면서도 이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확신하게 됩니다. 이렇게 훼방꾼들이 많은 걸 보니 이 길이 주님께 가는 길이 맞다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유혹을 피하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게 도와주소서. 제 믿음이 더욱 순수해져서 하느님의 기쁨이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단 하나의 동기가 되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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