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4월 13일 차가운 벽 앞에서

이종훈

413일 차가운 벽 앞에서

 

그 날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이 오천 명이 넘었는데도 그들을 모두 먹이고 싶으셨다. 애초에 그런 계획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생각은 황당하고 무모했다. 하지만 배고픈 그들을 먹이고 싶은 예수님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날이 안식일이어도 당신과 만난 병자들을 고쳐주셨던 분이다.

 

그런 마음은 나도 지니고 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실천이다. 아무런 계획과 준비 없이 갑자기 오천 명을 무슨 수로 먹일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코웃음 쳤을 것이다.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예수님도 그들에게 지지와 도움을 기대하지 않으셨을 지도 모른다. 역시 예상하셨던 대답을 들으셨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 이천만원 어치 빵을 갑자기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기대도 안 하셨으니 실망도 안 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니 실망은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수님께 한 아이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수줍게 내었다(요한 6,9). 예수님은 깊은 감동을 받으셨다. 위로를 받으셨고 힘이 나셨다. 그 아이가 내놓은 것들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예수님은 그것들이 없어도 당신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셨다(요한 6,6). 그것은 무너진 예수님이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봉헌이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고 싶다. 마음만 착한 것은 소용없다. 그런데 선행과 거룩한 일에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서 모든 일을 잘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넘어갈 수 없고 뚫고 갈 수 없는 높고 두꺼운 벽을 만난다. 그 벽의 실체는 재정과 제도가 아니라 돌처럼 굳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속상하고 안타까워 그 차가운 벽 앞에서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 벽을 뚫고 갈 수 없지만 내 슬픔과 한숨은 그 벽을 뚫고 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러지 못해도 내가 그러려고 했었음을 주님께서 아신다. 보리 빵 다섯 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의 사업에 보태드렸음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32 [이종훈] 3월 19일(요셉 성인 대축일) 위로하시는 요셉 성인 2018-03-19
열람중 [이종훈] 4월 13일 차가운 벽 앞에서 2018-04-13
130 [이종훈] 5월 19일 기록의 힘 2018-05-19
129 [이종훈] 5월 20일(성령강림대축일)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2018-05-20
128 [이종훈] 6월 12일 기도합시다 2018-06-12
127 [이종훈] 7월 2일 살기 위해서 2018-07-02
126 [이종훈] 7월 26일(성 요아킴과 안나) 보고 듣고 따르기 2018-07-26
125 [이종훈] 8월 10일(성 라우렌시오 부제순교자) 거추장스러운 자아 2018-08-10
124 [이종훈] 9월 1일(첫 토요성모신심) 성모님의 손을 꼭 잡고 2018-09-01
123 [이종훈] 9월 8일(성모탄생 축일) 다른 눈, 새로운 마음 2018-09-08
122 [이종훈] 9월 13일(성 크리소스토모) 하느님의 자녀 2018-09-13
121 [이종훈] 9월 26일 복음의 해석 2018-09-26
120 [이종훈] 10월 30일 나의 몫 2018-10-30
119 [이종훈]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작은 성인들 2018-11-01
118 [이종훈] 11월 11일(연중 32주일, 평신도주일) 그리스도인 2018-11-11
117 [이종훈] 11월 18일(연중 33주일, 가난한 이의 날) 구원에 대한 확신 2018-11-18
116 [이종훈] 11월 20일 문 밖에 계신 주님 2018-11-20
115 [이종훈] 1월 6일(주님 공현 대축일) 사랑의 임금이신 하느님 2019-01-06
114 [이종훈] 1월 19일 영성 선교 그리고 윤리 2019-01-19
113 [이종훈] 1월 22일 주일미사참례의무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