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작은 성인들

이종훈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작은 성인들

 

평일 저녁인데도 제주공항은 명절 시외버스터미널 모습을 방불케 한다. 모임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만석이다. 바로 옆 좌석의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칭얼대다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다. 이륙하는 느낌이 이상했는지 더 크게 운다. 아이들을 달래는 젊은 부부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오는 1시간 남짓 시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와 달래는 부모들의 힘겨움이 작은 비행기 안을 채웠다. 나는 참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됐다. 내 삶을 하느님께 봉헌했다지만 실제 삶에서는 봉사, 희생, 봉헌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승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그 젊은 부모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싶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미안한 마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자는 척 한다.

 

그들 뒷좌석의 할머니가 그 아이보다 한두 살 많은 손녀를 그 아이에게 소개시켜주어 그 젊은 엄마를 돕는다. 그 할머니는 그 젊은 엄마의 고충을 고스란히 끌어안아 민폐의 공범이 되기로 한 것 같다. 그 할머니와 그 엄마의 대화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안타까움에서 반가움으로 바뀐 것 같다. 미안함이나 위로의 말은 한 마디도 없지만 그 대화 속에서 그것을 느낀다.

 

세상이 험해도 축일 없는 그런 작은 성인들 때문에 살 만하다. 오는 내내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나 난민의 울음소리였어도 사람들은 참고 작은 도움의 손을 내 수 있을까? 예수님은 십자가형의 누명을 썼으면서도 행복을 말씀하셨다. 이기적인 나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 하셨던 선택과 선언은 참으로 큰 도전이다. 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젊은 부부의 짐을 내려주며 보니 아이의 눈이 퉁퉁 부어있다.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엄마의 손이 참 아름답다. 내 손도 그랬으면 좋겠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32 [이종훈] 3월 19일(요셉 성인 대축일) 위로하시는 요셉 성인 2018-03-19
131 [이종훈] 4월 13일 차가운 벽 앞에서 2018-04-13
130 [이종훈] 5월 19일 기록의 힘 2018-05-19
129 [이종훈] 5월 20일(성령강림대축일)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2018-05-20
128 [이종훈] 6월 12일 기도합시다 2018-06-12
127 [이종훈] 7월 2일 살기 위해서 2018-07-02
126 [이종훈] 7월 26일(성 요아킴과 안나) 보고 듣고 따르기 2018-07-26
125 [이종훈] 8월 10일(성 라우렌시오 부제순교자) 거추장스러운 자아 2018-08-10
124 [이종훈] 9월 1일(첫 토요성모신심) 성모님의 손을 꼭 잡고 2018-09-01
123 [이종훈] 9월 8일(성모탄생 축일) 다른 눈, 새로운 마음 2018-09-08
122 [이종훈] 9월 13일(성 크리소스토모) 하느님의 자녀 2018-09-13
121 [이종훈] 9월 26일 복음의 해석 2018-09-26
120 [이종훈] 10월 30일 나의 몫 2018-10-30
열람중 [이종훈]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작은 성인들 2018-11-01
118 [이종훈] 11월 11일(연중 32주일, 평신도주일) 그리스도인 2018-11-11
117 [이종훈] 11월 18일(연중 33주일, 가난한 이의 날) 구원에 대한 확신 2018-11-18
116 [이종훈] 11월 20일 문 밖에 계신 주님 2018-11-20
115 [이종훈] 1월 6일(주님 공현 대축일) 사랑의 임금이신 하느님 2019-01-06
114 [이종훈] 1월 19일 영성 선교 그리고 윤리 2019-01-19
113 [이종훈] 1월 22일 주일미사참례의무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