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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11월 16일 순수해지는 시간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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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순수해지는 시간 (+mp3)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다.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은 식는다. 나쁘지 않다. 처음 마음 안에는 내가 알아채지 못한 욕망과 선을 가장한 탐욕도 숨어 있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전례학을 꼭 공부하고 싶었다. 미사 때 사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별 관심 없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라 하느님이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는(요한 8,32) 복음 말씀에 마음이 움직여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자유롭고자 하는 바람이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왔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또 회개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제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웃에게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줄 수 완전한 사랑임을 알게 됐다. 그게 완전한 자유다. 내가 청한 자유가 그런 거였다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을 때(마태 20,22) 주님은 속으로 얼마나 웃으셨을까? 그들의 바람과 주님의 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예리코의 그 눈먼 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은 하느님 자신이었다. 시메온과 한나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볼 때까지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루카 2,25-38), 그는 구걸을 하면서 그분을 만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력을 회복한 후에 집으로 가거나 새로운 돈벌이를 구상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나병을 치유받은 열 사람 중 아홉은 기뻐하며 그냥 집으로 갔고, 한 사람은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돌아와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눈으로 직접 뵙고 감사드렸다(루카 17,11-19). 그리고 그도 다시 집으로 갔지만 예리코의 그는 예수님을 따라갔다.

 

요즘 교우들은 자신의 신앙이 큰 도전과 시련을 받고 있음을 느낄 거다. 성사 생활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지내는 건 뭔가 아닌 것 같다. 하느님이 성당 울타리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님을 더 확실히 알게 됐지만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신앙은 도전을 받아 더 순수해지고 굳건해진다. 하느님은 늘 그 자리에 그렇게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자신에게 묻자, 나는 뭘 믿나?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기를 바라나?

 

예수님, 세상 속에서 주님의 제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큰 도전입니다. 성당에서만 신자인 건 누구나 다 합니다. 예배 행위 때만 사제인 건 한글을 읽을 줄만 알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저희의 신앙이 더 순수해지는 시간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저희들을 주님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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