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성주간 월요일) 빛
아침 해가 떠오르면 온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풀과 나무, 꽃과 수다쟁이 새들, 밤새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자국과 어제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까지 모든 게 다 보인다. 빛은 어둠이라는 덮개를 걷어내서 모든 것을 다 보이게 한다.
예수님은 빛이다.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신다. 어둠 속에 감춰진 것들을 들춰내어 고발하고 심판하시는 게 아니고 가려진 상처를 드러내 치유하시고 어둠 속에 숨어서 세상을 병들게 하는 놈들을 몰아내신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모두가 다 반기고 좋아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을 좋아해 쫓아다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가릴 게 없는 가난한 이들이었다. 병과 상처가 밖으로 고스란히 다 드러나 있어서 그가 병자이고 또 죄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반면 최고 의회 바리사이와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을 싫어해 죽이기로 결의했다(요한 11,53). 그분이 죽음의 어둠 속에서 끌어내신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정했다(요한 12,10).
자신의 죄와 상처를 가릴 게 없던 가난한 이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반기고, 신분과 엄격한 율법 준수로 자신을 치장하고 가린 이들은 예수님을 거부했고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뜬금없이 예수님의 발에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부어 주위 사람들을 당혹하게 했다(요한 12,3). 누가 봐도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무리한 행동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민망할 정도로 고스란히 다 드러냈다. 그 비싼 향유를 다 부어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활동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걷어냈던 것처럼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 지극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 유다의 위선을 벗겼다(요한 12,6).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우선한다. 하느님의 일도 순수한 사랑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하느님의 일인지 자신의 욕심인지.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가릴 수 없다. 이 진리가 누구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구에게는 평화다.
예수님, 모든 게 멈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성주간 전례도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사랑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전례는 언젠가 다시 하게 될 것이고, 가난한 이웃은 늘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이상한 현실 속에서 참으로 겸손하고 가난하게 제 주님 사랑 실체를 들여다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밖으로만 뛰어다니던 시간은 멈추고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주님의 빛이 평화와 기쁨이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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