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성 마르티노 주교) 작고 단순한 믿음
용서는 가장 큰 사랑의 인간적인 행위이다. 예수님도 사시면서 죄인들을 용서하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보여주셨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3-4).”
남이 죄짓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고, 그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면 언제나 용서할 것이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그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청하지 않음에 대한 괘씸한 마음일거다. 그도 나에게 그런 마음이겠지.
사과와 용서를 청하는 말을 하루에 일곱 번은커녕 평생에 일곱 번 듣기 어려울 것 같다. 실수로 어깨를 툭 치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사과는 빼고. 그 대신 고해소에서는 잘못했다고 말할지는 모르겠다. 정작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고 그러지 않아도 용서하시는 분 앞에서는 진심으로 말한다. 그도 그리고 나도 용서해줄 준비가 다 되어있는 데 둘 다 그 말을 하지 않아 서로 불편하게 살아간다.
예수님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그 말씀을 들은 사도들은 믿음을 더해달라고 청했다(루카 17,5). 무엇을 믿게 해달라는 청원이었을까? 용서해달라고 말해도 된다는 믿음? 매 번 용서해주어도 괜찮다는 믿음? 뒤쪽에 더 무게가 실리지만, 우리가 청해야 할 믿음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도 나의 삶이 그를 불편하게 하고, 또 그가 사과하지 않아도 너그럽게 참아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일곱 번 용서할 마음이면 굳이 그가 사과하지 않아도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럴 능력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까지 증언하지 않으셨는가?
예수님, 돌무화과나무가 땅을 꽉 붙잡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조금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겨자씨는 정말 작습니다. 예수님과 그 정도의 친밀감만 지녀도 그 완고하고 딱딱한 마음을 녹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심오해서 바위 같은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도 할 수 있다고 하시니 그 말씀에 따라 마음을 바꾸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작고 단순한 믿음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과 더욱 친밀해지게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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