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믿으라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는 참으로 훌륭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 소녀의 춤 값으로 그리고 한 권력자의 자존심 때문에 살해당했다(마태 9,8-10). 그는 예수님의 친척이고, 동지이며 어쩌면 인간적으로는 선배요 스승이었을 수도 있다. 그의 그런 허망한 죽음은 곧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예수님의 미래였다.
하느님의 아들이어도 한 사람으로서 그런 비보를 전해 듣고 어찌 마음 아프고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외딴 곳에 홀로 계시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마태 14,13). 자녀들이 어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던가?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가르치고 군중들을 실컷 먹이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챙겨 먼저 보내시고 뒷마무리까지 다 하신 뒤 다시 홀로 산으로 가셨다. 그 때 거기서 예수님이 혼자서 무엇을 하셨는지 굳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잘 살고 싶다. 그 바람 안에는 편안한 삶도 끼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세속적인 바람을 마주하자마자 곧바로 또 다른 바람을 발견한다. 그것은 선하고 의롭고 참되게 살고 그리고 뜨겁게 진실로 사랑하고 싶은 거룩한 바람이다. 그것은 내 안에 거북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길을 먼저 갔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당당하고 무심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무관심한 듯 억지로 모르는 척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부끄러움과 그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 때 그 산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로하시며 이런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 같다. 세속의 도전과 유혹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이다. 수영할 줄 알아도 밤바다에 빠지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게다가 혼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함께 아니 내 안에 계신다. 그분은 유령이 아니다. 세속의 도전과 낙담 체념 불평 복수심의 바다 속에 자신을 그냥 빠뜨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나의 손을 잡아끌어 올리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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