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0월 2일(수호천사 기념일) 어린이
민방위는 오래전에 끝났고 조카 덕분에 삼촌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됐으니 나는 분명 어른이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어린이다. 사목 경험에 비추어보면 남자는 열두세 살 정도, 여자는 열네다섯 살 정도에서 성장이 멈춘 것 같다. 그런데 기도 중 하느님과 대화할 때 나는 그보다 더 어리다. 아홉 열 살 정도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아서 영토 군대 정부 같은 조직이 없다. 거기에서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느님이 임금이고 그분의 말씀이 곧 법이다. 그 나라는 하느님이 온전히 다스리신다. 그 나라 시민들은 하느님께 남김없이 순종한다. 외아들까지 내어줄 정도로 시민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 않을 시민은 없다.
사랑과 신뢰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이들이 하늘나라 시민이다. 제자들은 거기서도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만, 예수님은 반대로 어린이처럼 되라고 가르치셨다. 어린이는 작고, 취약하고, 의존적이다. 그들은 부모와 어른이 도와주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완전히 의존적인 존재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늘나라의 시민이면서 아직은 한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이다. 어른이 되었으니 독립적이어야 하고 나이와 지위에 합당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내적으로는 하느님께 완전히 의존적이다. 내 안에서 외적 어른과 내적 어린이가 충돌한다. 이 양 끝이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은 친절과 도움 그리고 친밀과 사랑이다. 이런 태도는 그와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그 안에 있는 신성(神性)이 드러나게 한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쉽고 빨리 친밀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앞서 거부당하고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 저는 센 척하지 않고 다 알고 있는 척하지 않습니다. 사실 세지 않고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힘은 주님을 믿음과 신뢰에서 나오고 참된 지식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데에서 얻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께서 주신 이 은총을 잘 간직하고 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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