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죄와 벌이 아니라, 죄와 용서를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의와 공정이고, 화해와 화합이다. 사실 우리만이 아니라 세상도 이것을 바란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형제를 언제나 용서해야한다고 명령하셨다(루카 17,4). 우리는 그렇게 고백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을 다 받았음을 잘 안다. 자신이 한 행동과 말을 후회하며 그런 자신을 미워하며 괴로워하고, 또 고백하기 전에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그는 충분히 벌을 받는다. 게다가 그것이 반복적인 잘못일 때 그런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저주스러운지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단죄와 심판의 권한이 없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께만 달려 있다. 더욱이 올바로 심판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일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던가! 아마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일은 당신에게 맡기라고 하셨나보다.
믿기 어렵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무슨 죄든지 용서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생의 마지막 시간에도 똑같은 죄를 또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에게는 희망이 없음을 잘 안다. 이 세상에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조건적인 용서와 한없는 자비,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해, 용서하기 위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더 굳게 믿게 해주십사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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