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자선과 선행 vs 고행과 보속
예수님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려는 그분의 제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하는지 교회의 관습을 따르고 수도생활을 익히려고 하는지 헷갈린다.
예수님이 바리사이들과 충돌했던 큰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자구적으로 해석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강요하고 그들도 겉으로만 그것들을 실천하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르지 않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것도 능력일까?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 말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처럼 사는 것은 평생을 두고 익혀야 할 과제이다. 그것은 곧 이 세상에서 하느님처럼 사는 것이다. 참으로 원대한 꿈이 아닐 수 없다. 죄인이 하느님처럼 살겠다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셨다. 여전히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는 것이다. 스승의 삶을 배우는 것은 스승을 흉내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분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가장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자선이고 선행이고 연민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라고 말씀하셨다. 자선과 선행은 우리의 겉과 속을 모두 깨끗하게 만들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행과 보속보다 이게 더 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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