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9월 12일(연중 제24주일) 줄서기
베트남 형제들이 라오스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할 때 작성한 계약서에는 순교를 받아들인다는 조항이 있었다. 현재 국제관계 현실을 생각하면 이적행위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종교적인 활동 때문에 사형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선교는 순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 형태로 자신의 삶 그리고 때론 실제로 목숨까지 내놓는 것이다.
조선교구 제1대 교구장은 부뤼기에르 주교다. 태국에서 보좌주교로 있다가 사제를 보내 달라고 청한 조선 천주교회 사정을 듣고 잠을 못 이뤘다. 그런데 그가 속해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장상은 선교사파견이 불가능하다며 4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그 4가지 이유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선교회 파견을 자원했다. 첫째 돈이 없어 못 간다는 이유에 대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돈이 필요했다면 하느님은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에게 진짜 없는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신앙인가?’ 둘째 보낼 사제가 없다. 맞는 말이었다. 거기도 사제가 부족했다. 50명이 필요한데 6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에는 한 명도 없다. 44명이나 45명이나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셋째 조선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가는가? 이에 대해 ‘대단히 부끄러운 얘기다. 그들은 사제도 없는 곳에서 이미 순교를 하며 목자를 찾고 있는데 목자라는 사람들이 양 떼의 편지를 받고 그게 어디인지 몰라 갈 수 없다고 하니 그게 말이 되는가. 찾아가야 한다.’라고 답했다. 넷째 조선은 박해 중인데 가봐야 붙잡혀 죽는 데 그곳을 어떻게 보내나? 이에 대해 ‘조선에 가도 손해 볼 게 없다. 사제가 양 떼를 만나면 사목해서 좋고, 죽는다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아 좋다.’라고 답했다. 그 후 그는 조선으로 가게 됐지만 가는 길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선교 순교 둘 다 못 했다.
어쩌면 그의 꿈은 새드엔딩(sad ending)이었다. 그런데 순교자들의 증언만큼이나 큰 울림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상이 든 4가지 이유 모두 합리적이다. 참사들과 의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거다. 그리고 부뤼기에르 주교가 반박한 내용도 하나 같이 맞는 말이다. 선교사 파견 불가 이유들은 세속적으로 타당하고, 그의 반박이유는 신앙적으로 당연하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마르 8,34). 그 이후 2대, 3대 조선 교구장이 계속 파견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인 교구장이 생겨났다. 복음은 세상 끝까지 선포된다. 하느님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당시 참혹하지만 거룩한 조선교구의 현실을 들은 여러 사람 중 한 사람만 움직였다. 게다가 그는 조선에 입국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 사람 그의 헌신이면 충분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말이다. 정말 줄을 잘 서야 한다. 하느님 편에 설 건지 그 반대편에 설 건지.
그는 그렇게 도전적으로 편지를 쓰고는 마음이 안 좋았는지, ‘저는 장상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순명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영원히 머무를 것처럼 일하면서 곧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라고 다시 편지를 써 보냈다. 우리는 매일 선한 결심을 하고 거룩한 일들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하지만 그 선하고 거룩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하느님의 뜻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예수님의 삶도 세속적으로 인간적으로 슬픈 결말이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성모님도 모르셨을 거다. 만약 예수님이 다른 좋은 일을 하시려고 십자가를 피하셨다면 지금 나의 이 모든 죄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가 잠시 세상에 살면서 꼭 가져할 단 한 가지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노력이 아니라 그것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긴다.
예수님, 악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주님을 유혹했으니 선한 일을 하려는 욕망은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과 중심, 성공 중심적으로 배워 만들어진 이 마음과 육체는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도 아주 좋은 유혹 거리입니다. 주님 십자가의 지혜를 가르쳐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십자가 아래 서 계셨던 수난의 동정녀이시니 제 맘속에 아드님의 상처를 새겨주시어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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