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무덤덤하고 무던하게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8,21). 그런데 실제적으로 일곱 번씩이나 연거푸 한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나? 베드로를 화나게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 사람은 아주 악한 사람임에 틀림없으니 그 공동체에서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사람은 악하지 않고 약하다. 선한 지향을 갖고 거룩한 결심을 해도 엉뚱하게 행동하고 그 결심도 지속되지 못한다. 나는 결코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된다. 때로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미안하고 또 억울하다. 그렇다고 아무 말 안 하고,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그것 또한 이웃을 괴롭히는 것이니 죄를 안 짓고 이웃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죽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사랑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절망적이다. 나는 나름 한다고 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고 서툴고 어색해서 자꾸 실수하고 실패한다. 나는 물론이고 너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그 무자비한 종도 그의 친구도 제발 참아 달라고 꼭 다 갚겠다고 맹세했다(마태 18,26.29). 잘 하고 싶지만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참아야지. 용서해야지. 일곱 번이나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그래야지. 그래야 나도 그렇게 용서받지 않겠나.
그러지 않으면 괴로워 살 수 없을 것이다. 매 번 그런 실수를 지적하고 짚고 넘어간다면 나도 너도 숨 막혀 살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은 마치 형리에게 고문을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마태 18,34). 그렇게 서로 고문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척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좋다. 악의가 있었다면 그것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고, 여기가 아니면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반드시 셈을 하게 된다. 무덤덤하고 무던하게 살자. 그렇지 않으면 무자비한 사람이 돼서 너도 나도 모두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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