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첫 토요성모신심) 성모님의 손을 꼭 잡고
아버지 하느님보다 성모님이 더 좋다는 교우들이 많다. 교리적으로도 잘못이고 성모님도 기뻐하시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지만 그런 마음에는 동감한다. 아버지는 근엄하고 무뚝뚝해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또 그분이 나에게 다가오시는 것도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반면에 어머니는 내 가까이 계시며 나의 모든 삶을 챙겨주셨으니 그분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하느님 아버지보다 성모님이 더 가깝게 느낌을 어쩔 수 없다.
땅에서 하늘 끝이 한없이 먼 것처럼 거룩하신 하느님과 나 사이가 멀다. 아드님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이기적이고 반복되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다. 하느님처럼 거룩해지고 완전해지고 자비를 베풀라고 하시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언제 들었는지 모르는 노래의 일부가 그 이유도 모르는 체 하루 종일 입에서 맴돌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하지만 뜬금없는 생각과 잡념들이 끊이지 않고 떠오른다. 거룩한 결심은 고사하고 작은 악습을 고치겠다고 수없이 결심하지만 변화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뼈 속까지 죄인이라고. 맞는 말이다.
내 처지는 한심하고 하느님은 너무 먼 곳에 계신다. 이 먼 거리를 이어주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가장 낮은 나와 가장 높은 하느님을 당신 안에서 화해시켜 평화를 이루어주셨다. 하느님 아버지가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나와 함께 사시는 것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좋겠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만나도 마음 안에서 만난다.
아버지 하느님보다는 우리 형제자매인 예수님이, 예수님보다는 어머니가 더 친근하다.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잘못된 표현이지만 마음이 그런 걸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럴 거다. 병원, 약국의 이름에 ‘성모’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아는 걸 하느님만 모르실 리가 없다. 수십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사셨던 분이 우리 마음을 모르는 척 하실 수 없다. 당신도 그러셨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성모님이 아님을 아주 잘 안다. 성모님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안심시키시고 손을 잡아 당신이 믿고 따르셨던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 손을 놓지 않는 한 그분은 죽는 그 시간까지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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