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버리기
다윗은 사울과 요나탄의 전사 소식을 듣고 옷을 찢고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 불렀다(2사무 1,11-12).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며 죽이려고 했던 원수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 슬픔이 가식이라면 애가를 직접 지어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창조할 수 있었겠는가?
하느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슬퍼하신다. 그분은 모든 죄인들이 마음을 바꾸어 당신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세상은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죄인을 심판하고 벌하면서 정의를 세우지만, 사실 선과 악을 온전히 구별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시고 죄인의 죄를 없애시고 돌아오는 죄인을 무조건적으로 품어 안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예수님 일생이 선포했던 내용의 요약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외치실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곧 하느님 나라였고 찾는 이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마르 3,21).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이 예전에 알고 있던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예전의 예수로 돌려놓으려는 것이었다.
나의 적은 내부에 있다. 내 가족 안에 있고, 내 안에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나의 기준이고, 행복의 조건이며, 심지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로는 죄인을 위한 심판관, 하느님의 희생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고(루카 9,23), 그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은 나를 매일 새로운 나로 만들어 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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