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한국순교자 대축일) 하느님이 반기실 사람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믿는다. 믿음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얼마나 확고하고 깊은 지 자신은 잘 모른다. 하느님도 모르시는 것 같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들의 믿음을 도전과 시련으로 시험하신 후 그들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셨다. 그들의 믿음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 더욱 굳건해졌다. 여기서 살면서 많은 시련을 받았지만 그들은 오지 않은 미래의 세상을 보고 벌써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살았다.
예수님의 죄명은 신성모독이었지만 실제로는 권력자들과 사회통념에 대한 위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 희생되셨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지만 그들 자신이 위협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여긴 것이었다. 우리의 순교 선조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미리 여기서 살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적으로 싸우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서 믿는 대로 조용히 산 속에서 살았다. 선조들의 삶에 위협을 받은 것 중에 하나는 신분제도였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것이 사회를 안정되고 유지시켜준다고 믿었던 그것을 거슬러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신분제도를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오늘날 세상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자기소개서의 종교 란에 천주교라고 적는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밝히는 여러 측면 중에 하나다. 그런데 순교자들에게 신앙은 곧 삶이고 생명이었다. 그들이 사는 방식이고, 이유이며 또 목적이기도 했다. 세상의 통념의 권력에 대항한 그들의 조용한 삶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다스리신다는 증언이요, 미래의 삶을 예고하는 표지였다. 박해는 그들에게 시련이었지만 그들의 신앙을 굳건하고 더 순수하게 만들어 그들을 더욱 생생하게 살게 해주었다. 마지막 날 하느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실 사람들은 세례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박해받았던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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