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24일 남는 것 (+ mp3)

Loading the player...

9월 24일 남는 것

 

살아보니 인생 별거 아니더라고 했던 어느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가을이 돼서 그런가? 뭐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다. 게다가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건지. 코헬렛이 한 말에 깊이 공감한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코헬 1,2-3)”

 

겨우 고작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열을 내며 일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그랬나. 정말 남는 건 사랑뿐인가 보다. 사랑했던 사람이나 일이 아니라 사랑했음 그 자체 말이다. 바라고 계획하고 실천했지만 남은 게 없다. 사람을 남기는 게 가장 큰 장사라고 하던데 그것도 없으니 정말 허무다.

 

그래도 남긴 게 있다면 그건 기도할 줄 알게 됐다는 것과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느님 편에 서서 사는 법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예수님처럼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죽기까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정도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디지만 그래도 그 길로 걷고 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까만코가 겁 없이 나무 위로 마구 올라가더니 저 높은 곳에서 어쩔 줄 몰라 야옹야옹 거렸다.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사다리 놓고 내려줄까 하다가 스스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떨어지면 받을 준비도 하면서 말이다. 좀처럼 내려올 길을 못 찾는 게 안쓰러워 손가락으로 내려올 수 있을 만한 나뭇가지를 톡톡 치니 그곳을 바라보고 바로 그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책임감이 생겨 더 자세히 보고 안내했다. 마침내 떨어지지 않고 잘 내려왔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책임지신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도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집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 올봄에 굴착기가 깨끗이 밀어낸 땅에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작은 정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생명력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를 돌보시고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그걸 아시고 모든 걸 내놓으셨겠죠. 저에게도 그런 신뢰를 가르쳐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천사의 말만 믿고 모든 걸 내어주셔서 온전히 하느님의 집이 되셨으니 저에게도 그 신뢰와 비움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415 [이종훈] 9월 27일 마음을 바꿔라(+mp3) 2020-09-27
414 [이종훈] 세상 읽기(+ mp3) 2020-09-25
열람중 [이종훈] 9월 24일 남는 것 (+ mp3) 2020-09-24
412 [이종훈] 9월 21일(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사랑의 상처 (+ mp3) 2020-09-21
411 [이종훈] 9월 20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순수해지는 시간… 2020-09-20
410 [이종훈] 9월 18일 오늘은 영원한 생명의 보증 (+ mp3) 2020-09-18
409 [이종훈] 9월 16일 내 밖에 있는 진리 (+ mp3) 2020-09-16
408 [이종훈] 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내리사랑 (+ mp3) 2020-09-15
407 [이종훈] 9월 14일(성 십자가 현양 축일) 수고하고 고생하는 사람들 (+ mp3) 2020-09-14
406 [이종훈] 9월 12일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 (+ mp3) 2020-09-12
405 [이종훈] 9월 10일 껄끄러운 동거 (+ mp3) 2020-09-10
404 [이종훈] 9월 6일(연중 23주일) 하나가 되는 길 (+ mp3) 2020-09-06
403 [이종훈] 9월 5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하늘에 있는 나라 (+ mp3) 2020-09-05
402 [이종훈] 9월 4일 구원을 위한 비움 (+ mp3) 2020-09-04
401 [이종훈] 9월 3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더 깊은 곳에서 (+ mp3) 2020-09-03
400 [이종훈] 9월 2일 기적이 없어도 (+ mp3) 2020-09-02
399 [이종훈] 9월 1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구원의 길 (+ mp3) 2020-09-01
398 [이종훈] 8월 29일(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의로운 그리스도인 (+ mp3) 2020-08-29
397 [이종훈] 8월 28일(성 아우구스티노 기념일) 사랑받음 (+ mp3) 2020-08-28
396 [이종훈] 8월 19일 배워야 할 이상한 셈법 (+ mp3) 2020-08-19